사회 약자층을 위한 예산은 내년도 예산 요구안에서 줄줄이 깎였다. 정부가 내세운 ‘친서민 정책’이 예산 설계 단계부터 무색해지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내년에 1273억원을 요청한 긴급복지 예산 중 622억원이 의료안전망 구축에 투입된다. 경제위기 등으로 갑작스럽게 어려움에 처한 서민을 위해 쓰도록 한 긴급복지 예산의 절반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아동시설 지원 예산은 올해 552억원에서 409억원 깎인 143억원이 책정됐다. 보육문제 탓에 서민들이 아이낳기를 꺼리는 실태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늘 부족하다고 지적돼온 입양가정을 위한 입양수수료 지원비도 21억원에서 16억원으로 깎았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벼룩의 간 내먹기”라고 불평했다.

장애인 예산도 어김없이 깎였다. 장애인 생활시설 기능보강 예산은 83억원이 삭감돼 194억원에 그쳤고, 역점 사업 중 하나인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기능보강 예산도 50%(90억원) 넘게 뚝 잘려 75억원을 요구했다. 노숙자들을 위한 부랑인시설 기능보강 예산도 20억원(57.2%)이 삭감된 15억원이 책정됐다.

비정규직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 추진단 운영’ 사업은 예산 3억원이 모두 삭감됐고, ‘비정규직근로자 장학금지원’ 예산 50억원도 내년 요구안에선 빠졌다. 정규직 전환 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세액공제도 올해로 종료됐다.

여성 고용 예산도 후퇴했다. ‘고용평등환경개선 지원’ 예산이 8000만원 줄었고, 지방노동행정 사업인 ‘고용평등업무지원’ 예산은 800만원 삭감됐다.

지역별 복지사업의 축소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북지역에선 저소득층 주거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동네마당’ 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시행 1년도 안돼 축소되거나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대전에서는 대덕연구개발특구 관련 요구액 697억원 중 350억원만 반영됐다. 예산이 반토막나자 지자체에선 ‘보통구’ 전락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울산시에서는 장애인복지 예산이 바닥 나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금 지원중단에 항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제주도는 올해 제주시 5000만원, 서귀포시 1800만원 등 6800만원을 저소득층에게 지원했다. 경제난 등으로 저소득층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예산이 충당되지 않아 지원 규모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송진식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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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장애인·결손가정은 불행’ 편견 조장
ㆍ직업 고정관념 여성 차별 내용 수두룩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163쪽) ‘세계의 불행한 어린이를 돕자’는 ‘불행한 어린이’에 소녀가장·장애아·고아를 열거해놓고 있다. ‘장애, 고아=불행’이라는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초등 6학년 영어 7단원 ‘직업카드’ = 의사·조종사·경찰은 남성, 교사·간호사는 여성


현행 초·중·고 교과서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차별적 내용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초·중·고교 교과서 집필자·편집자들과 ‘인권 친화적 교과서 도입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교과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소개했다.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151쪽)는 명절문화 개선을 소개하면서 “음식준비, 손님맞이 등으로 고생하는 여자들을 배려하여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고 서술하고 있다. 명절 음식준비는 여성의 역할임을 전제하는 성차별적 서술이다.

중등 2학년 도덕 61~62쪽 = 한쪽 집단을 일방적인 가해자나 문제 유발자로 서술


초등학교 6학년 영어 7단원 직업카드에는 의사·조종사·경찰은 남성, 교사·간호사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ㄱ 출판사, 108쪽)에는 국제협약 관련 각국 대표를 모두 남성으로 그려놓았다.

가정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대목도 많다. 교육과학기술부 검인정을 받은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ㅈ 출판사 249쪽)에는 ‘결손가정’이 ‘정상가정’의 반대 용어로 제시돼 있다. 같은 교과서 267쪽에는 ‘장애인’이 ‘정상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서술돼 있다.

사회적 갈등 사건의 경우 대립 집단을 대등하게 다루지 않은 사례도 지적됐다. 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61~62쪽)는 그린벨트 조정안에 대한 지역주민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주장과 논리는 제시하지 않고 “그린벨트 지역주민들이…공청회를 저지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고 서술돼 있다. 중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ㄱ 출판사 105쪽)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주민들의 철도 차량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서술하면서 철도청의 노력은 부각시킨 반면 주민들에 대해서는 “많은 보상을 들이고서야 반대운동은 잠잠해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고등 도덕 80쪽 = 장애인과 봉사자들의 모습을 ‘도덕공동체’로 서술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143쪽)는 가족 건강지수를 점검하는 내용에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감·자존감·행복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는 항목을 삽입했다. 인권위 인권교육과 김철홍 과장은 “ ‘한 부모 가정=건강하지 못한 가정’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새로운 교과서는 집필단계에서부터 인권적 관점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한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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