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겨울폭포는 빙벽을 타는 산악인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를 제공한다.
장엄한 폭포가 하얀 얼음으로 덮여 장관을 이룬다. 이런때를 시작으로 빙벽의 맛을 느끼고자 전국곳곳에서 찾아온다.
여기에 사는 나조차도 모르는 곳을 빙벽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자연과 함께하는 곳이면 어디든 사계절을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자연은 인간에게 신선함과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가져오게한다. 인간의 손이 닿은 인위적인 만들어진 곳은 이런한 건강을 가져오는데 한계가 있다.

인간이 자연과 하나라는 당위성속에서만이 그 혜택을 충분히 받고, 그것을 계속이어나갈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가을이면  겨울을 맞이하려는 나무들로하여금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며 세월의 우울함을 느낍니다. 파릇파릇한 새순을 시작으로 푸르른 잎이 나고 꽃이피고, 열매가 맺고, 시들어져 가는 것을 보며 세상의 우울함을 느낍니다.

10월 26일 단풍이 다 떨어지기전에 아름다운 단풍을 보려 양폭을  목표로하여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벌써 시작인가 싶더니, 아느사이 나뭇가지만 있는 앙상한 나무들과 차디찬 바위 위로 떨어진 나뭇잎들, 물을 따라 흘러 가는 나뭇잎, 그리고 일부는 물위에 둥둥 떠 있기도 합니다.

자연의 화려함과 소박함, 스잔한 세월은  무상함이 느껴지는 인간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배움과 느낌도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죠.
그 속에서 우리들은 사는 동안이라도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마치 오늘만 살고 말 인생들처럼, 아주 바삐..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은 아름다울 때도 있고,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추억에 잡혀 있고, 어떨 때는 그 추억에 좌절된 인생을 살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우울한 것들은  다음에 활기찬 다른 것들의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삶들을 시작합니다. 그러기위해 우울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울한 것들을 발로 밟고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 그것이 희망이고, 나아갈 목표입니다.  인간이기에...


양폭을 오르며 비선대에서 흐르던  물줄기가 잠깐 쉬어가는 곳에 낙엽들도 쉬고 있습니다. 

자연의 어머니인 물에서 잠시 쉬었다 가려는가 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강릉과 동해사이에 안인항이라는항구가 있다. 80년대 북한잠수함이 침투하여 발각되어 유명하기도 하다.
 
이일대가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쾌방산의 명성을 날리는데 일조를 했다.

바다를 끼고 해안산을 따라 북으로 가려는 무장간첩들과 이를 잡으려는 군인들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주민들은 며칠동안 잠못자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혹시나 시내로 내려올까 염려되는 가운데, 군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있어지만, 그 나마 그만하게 된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곳에 가면 그때 타고 온 북한 잠수정이 전시되어 있다.

 


강릉시는 이것을 토대로 안보체험관광지로 개발하였다.진짜 항구와 선이 불과 2~30미터거리다. 힘껏 뛰면 5초면 산으로 진입이 가능한곳이다. 우리는 이길을 가보았다.

길이 경사도가 급하지 않고 유하여 어렵지 않다, 운동하기 딱 좋다. 오르다보면 삼봉산이라하는데  정상에 널판지 비슷한것으로 정자를 만들어 노혹, 그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게 만들어 놓았다. 정상은 사방 80평정도로 넓게 목재로 다듯어 놓아 아래를 볼 수 있게했다. 아래가 바로 안인항을 비롯한 동해안이 보이는데, 배가 움직이는 것을 쉽게 관망할 수 있고, 수십키로나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 그렇게 멀리 보이는것 같다. 탁 트인것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약간 내려오면 옛성터라고하는데, 돌계단과 돌벽, 그리고 돌탑이 형성되어 있어 약간의 눈피로와 생각을 달리하는 상상으로 잠시나마, 학창시절 국사책에서 배우는 수많은 외세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애써온 선조들의 노력과 그 함성들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보았다.

두번째 봉우리에는 전멍대가 있어, 바다와 같이 강릉시내가 훤히보이고, 저 멀리 그 이상의 탁트인것이 주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안보체험 등산로라고 적혀있다

     

여기가 바로 사방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안보가 관광자원화 된것이다.


이렇게 바다와 강릉시내 정동진까지 한눈에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우리는 서 있는것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아래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어 그들은 이곳을 택했을 것이다.

이런곳이 관광자원화로 탈바꿈이 될 지는 예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되돌아 보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곳이지만, 시간의 흐름이 약이 되고 추억이 되어 , 그 옛 추억으로 만들고, 그 추억을 바탕으로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반은 바다고 반은 산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생활터로 만들어졌다.

바다에서 삶이 만들어지고 생활이 만들어 지듯 , 육지에서도 그렇다.

푸른바다의 아름다운 장관이란 육지에서만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동경에 대한 상반된 환경이 또 다른 활력소를 만들어 준다.

이렇게 자연의 혜택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 존재할때만이 삶에 대한 가장 소중함을 느끼는 행복감에 살아 갈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낸 어색한 자연은 처음 태고의 자연을 모방 할 지 몰라도 같거나 더 나을 수 는 없다, 역사의 지속성을 자연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후손과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하여ㅆ든, 이곳의 여정을 뒤로하고 정동진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위의 기지국으로 통하는 길과 아래로 가는양갈래의 길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있다, 등명락가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이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처음오는 절이지만,한눈에 보아도 웅장함과 세련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위치는 뒤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푸른바다가 탁트여 보여,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누가 보아도 잘알 수 있다.

오늘은 이만쓰고 다음에는 등명락가사를 잠시 적어보아야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환경을 지키는 것은 개발을 하지 않는것이 최선이다. 마약은 하면할 수록 중독성이 있어, 마약을 자주하면 나의 몸을 망가 뜨리다.

건설도 어느정도 해야지, 건설에서 나의 삶과 풍요로움을 느끼는 목표로 삼고, 그에대해 계속한다면 이것 또한 중독이고 결국은 자연을 망가뜨린다.
 건설은 하면 할수록 거기서 위안을 찾으려는 중독성으로, 나의 주위환경을 ,지구를,우주를 망친다. 건설만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줄 것 같은 느낌으로 중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망친 자연은 원상회복하기 어렵다, 원상회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희생을 강요한다. 그래서, 자연은 자연스럽게 나드어야한다.
 자연을 망친 사람들은 인류의 역적이다. 사람에 대한 역적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역적이다. 자연에 대한 역적은 곧 인간환경에 대한 역적이고, 인간스스로에 대한 자신에 역적이기도하다.

옛날에도 역적은 그러한적이 있듯, 3대를 멸해야 할까나?

사람을 위해 꼭 개발을 해야한다면 최소한의 개발을 해야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필요이상의 편리함과 자기만족을 위해 죽을때 가지 욕심을 부린다.

필요이상의 것을 하면 환경파괴가 되는것이다.

환경파괴의 끝은 파멸이다. 인간의 능력이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 없는한 파멸의 길은 자명한것이다.
지금도 지구 이곳 저곳에서는 그런 원인에 대한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다.

우주는 서로 맞물려 균형을 유지하며 서로 맡은 역활속에 돌아가고 있는데, 그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균형은 깨져 망가지고 흩어져 없어져버린다.

건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건설은 마약과 같아 그 풍요함이 지나쳐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

눈 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자연의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때가서 후회한들 그때는 이미 인간의 존재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래기사는 강원희망신문에서 -------------------------------------------------------------------------------------------------------------


춘천시는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 총 300억원을 투자해 공지천을 문화, 생태 친수공간으로 정비하는 ‘공지천 생태하천 정비사업’을 올해 말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사 현장을 지켜본 한 시민은 “생태하천을 조성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생태환경을 없애고 인위적인 바위 제방을 쌓고 있다”며 분개했다. 사진은 지난 4일 '공지천 생태하천 정비사업' 공사현장(왼쪽)과 생태하천 공사를 진행하지 않은 자연하천(오른쪽).

*출처: 강원희망신문 http://www.chamhope.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요즘 아침드라마 "분홍 립스틱"의 시청자다, 가끔 출근시간대에 빼먹을 때도 있지만, 여간해서는 dmb라도 틀어 시청을 한다.

처음에는 자기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는 미란, 그리고 가은과의 관계와 박정우의 계산된 접근과 결혼방식등 이 너무나도 치사하고 그 속에서 끝이없이 당하며 지내고 있는가은, 그리고 시청률이 높아서인지 반복되는 일과 복수를하는 모습이 시간을 끄는듯한 인상을 주어 따분하기도했다.

그렇게 당했으면, 상대방에 대해 모든일에 대해 주의할만도 한데, 모른척하며 또당하고 또 당하고, 그렇지만 어떤때는 그 이상으로 대처하는 드라마의 상황들이 잘맞지 않는 모순들로 시청자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금의 방식을 보면 예상밖의 일이 벌어진다. 삼촌과 조카가 한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일과 가은이의 복수를 위해 한집안(독고영재)을 망가뜨리는 것은 박정우와 미란이를 비교해 볼때 별반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은이가 예처롭기도하고 불쌍해보였으나, 한집안을 망가뜨리는 것은 별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꼭 죽어야만하는 죽는 것이아니라, 평생안고 가야할 마음의 상처와 가족간의 이간질적인 관계는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요즘같이 패륜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좀 더 상쾌하고 , 좀더 발전적인 인간적인 면으로 방향을 잡았으면하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드라마로 재미를 일으키지만, 알게 모르게 주위 환경에 물들어 가는 것이 인간들이다.

조카와 사랑을 하고, 사위하고 부르며, 어머니라고 부르던 관계가 숙모로 변하는 것이 올바른 가치를 가진 자들의 행동인가하는 것이다.

유독 이런관계가 이드라마에서 뿐아니라, 더한 패륜드라마도 엄청많다.

가은이의 복수를 위해 인간본연의 모습에 반하는 행동, 자기의 욕심을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것은 돌고 돌아가는 인간사의 세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치솔하기만하다.

이러는 가은이에 대한 연민과 애처러움이 이제는 박정우와 미란이의 복수에 대한 감정에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그놈이 그놈이네라는 생각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작가의 의도는 잘모르겠지만, 그래도 한쪽은 인간다운 상쾌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갔으면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한가지의 사건을 보고 각기 다른 판결을 내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으로 누려야할 기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공무원이기에 사람임을 포기해야하는 정치적 관점에서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판사들이 보는 관점에서 달라지는 판결이기에 어떻게 보면 판사자체의 성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것이기도하다,

유럽에는 오히려 고위층의 공무원들을 정치적 중립에 대해 법으로 명시되고, 하위직들은 정치활동을 해도 인정이 되는 나라도 있다.

자료출처 ; 경향신문


우리나라는 권력의 정치성향에 공무원들을 수족으로 생각하여, 정치적 중립을 중요시한다, 고위직의 정치활동에 필요한 수단으로 보기때문이다.
그래서,옛날부터 공무원들은 당연히 여당측의 표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한다.

힘없는 사람들의 정치적 활동으로 그 권리를 법으로 담아서 그들을 보호하고, 힘있는자들의 정치활동을 차단해 중립적 오너로서 사회를 통치하는 것이 마땅히 당파 싸움에서 벗어나 모든사람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편히 살수 있는 정치를 펼수 있을 것이다. 생활자체가 정치이고 그것이 정치에 반영되어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다.

그 생각들이 지금이나 옛날이나 별 달라진게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존중과 삶의 가치가 존중되어야한다. 개인의 삶, 가치의 존중에 대해 등한시 하고 벙어리 되기를 강요한다면 독재적권력의 권력자들에 의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옛날 자유당시대에는 초헌법과 주먹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다스렸다고 한다면 지금은 허가를 받은 합법적 공권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삶이 얼마나 사회에 반영이 됬는가는 우리들 스스로 생각을 해보아야한다.

남에게 해를 입힌것이 아니라면 국정운영에 참고를 해야할 권력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눈의 가시를 빼어버린다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과연 옳은가!, 국정운영에 반영하면 권력을 유지 못할까 안달이나 아예발로 비비고 또 비며가면 확인이라도 하듯 법으로 옭아맨다.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이지만, 그역사속에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못들어가는 것은, 권력자들의 당파싸움 또한  5000년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권력만 잡으면 이전의 상대방에 대한 역사를 지우고, 또, 지우고 이러한 반목이 걸림돌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것이 사회에 녹아 축척되며 오류를 수정해 나가야 계속적으로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역사를 되돌리는 행위는 , 역사를 좀먹는 암적존재인 것이다.

자기의 생각은 옳고 남의 생각은 틀리다라는 것은 수장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옛날의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이 적어, 주로 흑백논리와 색깔론으로 공격을 해왔다. 그 색깔이 여러색깔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국가에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다보니 여러색이 아름답게 어울려져야하는데, 세상에는 2가지 색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
많은 색이 융합되어야 아름다운 색이 나오는 것이다. 상대방을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야한다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틀리면 다 적이다.

야당에 대한 린치가, 공권력으로 변하여 집행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옳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말해준다, 폭력과 테러,린치로 상대방을 굴욕시키려했지만, 그 권력욕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법의 모순이 그대로 베어 있다는 것이다. 이법으로 안되면 저법으로 걸린다는 것이다,
법의 일관성이 없다,
칼자루 쥔자들이 장땡인 것이다.
모든법은 헌법에 우선시 되어서는 안된다.

하기야 헌법도 고쳐야 한다는 판국에 진리가 있겠느냐만은 적어도 도리와 인간적 삶이 되어 있어야한다.

개개인에 대한 인간적 삶이 무시되는 사회가 과연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요즘 아이더 낳기운동에 전난리들이다. 부강한 나라를만들려면 자손들이 많이 낳아 세계 각국으로 나아가 국위를 선양하고 주요자리에서 세계구석구석에서 활동하여 대한민국을 알려내고 만들어 나간다.

이것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자손에 대한 문제이기도하다. 어떤나라이건 소수민족들은 점점위축되어가고,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간다.

그런면에서 우리들은 열심히 자손을 번성시키는 것이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기도하다.

그렇다고, 애들만 많이 나면되는냐, 그것에 제반되는 경제적지위,인권에 대한지위, 사람을 존중할 줄아는등의 기본적이정신이 베어 있어야하고, 그것을 행하여야만 나라에 대한 내실을 담보할 수 있다.
즉, 사람사는 세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지구 우리나라는 애들은 낳으라고 하면서, 사람이 필요없는 나라를 마들고 있다. 사람들을 경제적수단으로 생각하고 이용하여 부속품정도로 생각한다. 이 경제적인 도구들이 경제성으로 접근하니, 마땅히 기계에 밀려나는 것이다.

바로 주변만보더라도, 그전에는 지하철 매표소에 사람들이 있어, 궁금한것이나,처음 온 사람들로 쉽게 할수 접할 수 있었다, 사람냄새가 콘크리트위에서라도 피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사람이 있던자리에 썰렁하니 자판기가 있어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기계로 대신하니 사람이 필요없다, 전화 교환원, 공장등 사회 곳곳에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계로 체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접근하면, 당연히 사람이 필요없다. 그래놓고, 애들은 낳면 보조금을 100만원주니,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면 꽁짜로 다닐 수 있네하면서 사탕발림으로 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좀 경제적인 여건이 되는 사람은 약간보탬이 되겠지만, 요줌같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사람에게는 낳아놓고 부모때와 같이 힘든 삶을 살아가라는 이야기인데, 누가 내자식이 고생하며 살아가는것을 원하는가?

애들낳았다가 점점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요소들인데, 기계로 인간을 만들면 될것아닌가.

회사들고 구조조정을 하며, 짤려나가고,가정이 파탄나고있다. 

국민을 만들어 놓고 죽이는 정책으로 가는 것을 누가 책임지려는가, 정권5년이면 교체되지만 서민들은 세상끝날때 까지 고통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 애들의 장래는 누가 보장하는가,

지금 정부가 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로보트가 필요할것 같다.

차라리 과학기술을 발달시켜 인조인간으로 만들어 주민등록증을 부여하여 시켜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 아닌가. 막찍어 내니, 인구도 팍팍늘고 폐기하기도 편하고.생활고 때문에 범법자도 없을 것이고. 경제성도 좋은 나라가 될것이다.

이런 정책은 결국, 서민들을 두번 죽이는 기만정책이다. 사람을 목숨과 삶을 놓고 장난질 치는 것 밖에 안된다.

90%를 희생하여 10%를 먹여살리는 정책은  한번이면 족하다, 지금의 프로테이지가 거꾸로 가는 세상이 오고 사람위주의 정책이 기본이 되지 않는 한,  인구정책에 있어서는 실패만이 있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로마식 이름이다. 독일 철학의 근대적 집성자인 게오르크 헤겔은 1821년에 <법철학>을 발간했다. 30년쯤 뒤에 마르크스가 통렬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이 보수적인 책의 서문에서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아오른다"고 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혜를 뜻하고 '황혼'은 현실의 사태가 진행되어 결말에 이른 것을 뜻한다. 일이 상당히 진행되어야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서양 철학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 유명한 문구를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구를 통해 미네르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부엉이는 미네르바의 새로서 지혜를 상징한다. 1982년에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인조인간을 만든 타이렐 회장의 거실에 한 눈이 먼 부엉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엉이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잃고 불완전한 지식으로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신의 지위에 오르고자 한 인간을 상징한다.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은 기껏해야 한쪽 눈이 먼 부엉이를 옆에 둘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아버지 주피터의 머리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총명해서 지혜의 여신이 되었으며, 그의 부엉이는 두 눈이 온전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밝아서 밤에도 온갖 사물을 환히 볼 수 있다. 이렇듯 미네르바와 그녀의 부엉이는 혼란에 빠진 인간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를 상징한다.

이즈음 이 나라에서는 그야말로 '미네르바 신드롬'이 불고 있다. 잘 알다시피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리는 현재의 경제 위기에 관한 글들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글의 분석과 통찰에 그야말로 전율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그의 글들은 은밀히 감춰진 행간을 드러내 보여주고,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분명히 밝혀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들에서 신화의 미네르바가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고 이 세계의 진실을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네르바의 글들을 읽으면, 제 아무리 비단으로 덮은들 똥은 결코 숨길 수 없으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만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미네르바의 글들에 전율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전율한다고 해도 그 이유가 같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밝히는 진실을 깨닫고 전율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진실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그들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또 다른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그러나 현실이 과연 이성적인 것인가? 온갖 투기와 부패, 그리고 거짓이 횡행하는 우리의 현실이 과연 이성적인 것인가? 이러한 헤겔의 주장은 실상 나폴레옹 이후 독일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논리로 큰 비판을 받았다. 지금 우리의 미네르바를 색출하고 규제하기 위해 애쓰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 정권이 헤겔의 잘못된 주장을 되뇌며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R의 위기', 'D의 위기', 'J의 위기'와 같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공포영화의 제목과 같은 말들이 계속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이 가리키는 현실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기를 뜻한다. 이 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 위기에 시달리게 되고, 이 나라가 더욱 더 심각한 난민사회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 통화 스왑 협약을 체결하고 이제 경제 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때 우리의 미네르바는 경제 위기는 더욱 더 깊어지고 있으며, 한미 통화 스왑 따위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은 미네르바와 같은 사람들이 불안 심리를 퍼트려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한다며 미네르바 색출 작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강부자'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강행했다.

참으로 한심하고 위험하다. 문제는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와 그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대응이 아닌가? 누군가 이 문제를 정확히 짚어서 널리 알렸다면, 그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권의 도리가 아닌가? 이명박 정권은 가장 기본적인 도리마저 저버렸다. 이 때문에 문제는 더욱 더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더욱 더 명확하게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한편으로 미국에서 달러를 빌리고, 다른 한편으로 너무나 후진적인 토건국가 정책으로 현재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시 1500원을 넘어 버린 환율은 미국에서 달러를 빌리는 정책이 별 실효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바로 '강부자'를 위한 정책인 토건국가 정책은 이미 망국적 상태에 이른 개발과 투기와 부패의 문제를 극단화할 것이다.


▲ "1997년의 경제 위기가 잘 보여주었듯이 '강부자'는 경제 위기에서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을 비롯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될수록 '강부자'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프레시안

나는 미네르바가 세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미네르바는 현재의 경제 위기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잘 가르쳐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의 경제 위기는 경기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또한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크고 긴 관점에서 파악하고 우리의 문제를 바로잡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토건국가와 금융 거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망국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둘째, 미네르바는 이명박 정권을 비롯한 보수 세력의 문제에 대해 잘 가르쳐주었다. 어디를 막론하고 보수 세력은 자기의 사익을 보수라는 말로 치장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에서 강력한 기득권을 누렸던 한국의 보수 세력은 더욱 더 그렇다.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계속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들에게는 국가의 이익보다 '강부자'의 이익이 우선이다. 그들은 종합부동산세가 부자와 서민의 문제가 아니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그들은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이 분명 보수 세력의 일원이라고 해도, '빨갱이'라는 처벌적 규정을 서슴없이 들이댄다. 그들은 사리와 이치를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만성적 '빨갱이병' 환자들이다.

셋째, 미네르바는 시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미네르바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시민들에게 시종 배우라고, 그래야 속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실 민주주의는 각성한 시민을 전제로 성립한다. 주권자인 시민이 무지하고 무책임하다면 민주주의는 이른바 '중우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지역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이 정권의 문제는 이미 '747 공약'과 '대운하 공약'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기대를 품고 이 공약을 지지했다. 그 막연한 기대의 바탕에는 현실에 대한 무지가 놓여 있었다. 민주주의에서는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이 결국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박 정권은 진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시정하기보다 '강부자'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는 길을 택한 것 같다. 1997년의 경제 위기가 잘 보여주었듯이 '강부자'는 경제 위기에서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을 비롯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될수록 '강부자'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관변단체들은 또 다시 뭘 모으자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짓은 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킬 뿐이다. 후진적인 토건국가와 금융 거품을 해소하고 한국 사회의 질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조직과 재정구조부터 진정한 선진국의 형태로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책임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