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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해당되는 글 7건
- 2010/12/10 국민의 세금이 한나라당 쌈짓돈. (2)
- 2010/10/20 바다와 산이 가장 가까워 침투하기 좋았다는 안인항
- 2010/02/05 헌법판사와 정치판사
- 2009/12/15 헌법을 비웃는 형법
- 2009/11/09 09년 11월 8일 노동자대회 이모저모
- 2009/11/07 국무총리의 역사관,민족관 진짜 의심간다.
- 2008/12/20 "뉴라이트는 왕조시대 '正史'의 부활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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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그저 밀어 붙이며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상처를 입히는 군인출신의 국회의원이나, 쪽수로 밀어붙이는 여당이나, 이제는 세상 살만큼 산 사람들의 아집이나, 독재국가에서 생각과 행동이 굳어진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알까, 조폭으로 직업을 바꿔야 할사람들이 많다.
국민들 등쳐먹고 사는...
옛날이 좋았어, 몇대를 이어가며 가진 권력자들이 배우고 익히며 닦은것이 그런 사고와 행동들이다.
그저 그 생각에 서민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는.. ....
그 사람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후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특히 4대강 사업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상정조차하지 않거나 자기들이 좋아에만 편성 집중하여 예산편성을 하여 통과시켰다
과연 한나라당답다.
모든 국민이 피땀흐려가며 벌어들여 반강제적으로 세금을 올리고, 부자감세를 하더니,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세금은 그저 여당의 쌈짓돈에 불과하듯이 자기들 마음대로 사용한니 말이다..
세금은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보아야하는 것이 기본상식이다,
특정지역이나 특정인에게 돌아가도록하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강제로 빼았아 자기마음대로 사용하는 개인적인 돈에 가깝다.
그저 자기하고 싶은데로하는 사비에 다름아니다.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고, 안쓰고 싶은 곳에 안쓰는 개인돈이라는 것이다.
그 사업이 결과가 어떻든간에 모든 국민의 의견이 그 속에 녹아 있어야한다. 그것이 국민이 선택한일이고, 국민의 뜻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민주국가이다. 또한 그것이 독재인가 민주국가인가를 판가름하는것이다.
자기들 마음대로하는 것이 민주국가라면, 이 세상에 민주국가가 아닌 나라가 없다.
이 다음에 역사적으로 평가는 받겠지만, 그평가속에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행동은, 업적이야 남겠지만 독재자의 오명은 벗지 못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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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대가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쾌방산의 명성을 날리는데 일조를 했다.
바다를 끼고 해안산을 따라 북으로 가려는 무장간첩들과 이를 잡으려는 군인들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주민들은 며칠동안 잠못자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혹시나 시내로 내려올까 염려되는 가운데, 군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있어지만, 그 나마 그만하게 된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곳에 가면 그때 타고 온 북한 잠수정이 전시되어 있다.
강릉시는 이것을 토대로 안보체험관광지로 개발하였다.진짜 항구와 선이 불과 2~30미터거리다. 힘껏 뛰면 5초면 산으로 진입이 가능한곳이다. 우리는 이길을 가보았다.
길이 경사도가 급하지 않고 유하여 어렵지 않다, 운동하기 딱 좋다. 오르다보면 삼봉산이라하는데 정상에 널판지 비슷한것으로 정자를 만들어 노혹, 그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게 만들어 놓았다. 정상은 사방 80평정도로 넓게 목재로 다듯어 놓아 아래를 볼 수 있게했다. 아래가 바로 안인항을 비롯한 동해안이 보이는데, 배가 움직이는 것을 쉽게 관망할 수 있고, 수십키로나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 그렇게 멀리 보이는것 같다. 탁 트인것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약간 내려오면 옛성터라고하는데, 돌계단과 돌벽, 그리고 돌탑이 형성되어 있어 약간의 눈피로와 생각을 달리하는 상상으로 잠시나마, 학창시절 국사책에서 배우는 수많은 외세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애써온 선조들의 노력과 그 함성들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보았다.
두번째 봉우리에는 전멍대가 있어, 바다와 같이 강릉시내가 훤히보이고, 저 멀리 그 이상의 탁트인것이 주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안보체험 등산로라고 적혀있다
여기가 바로 사방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안보가 관광자원화 된것이다.
이렇게 바다와 강릉시내 정동진까지 한눈에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우리는 서 있는것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아래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어 그들은 이곳을 택했을 것이다.
이런곳이 관광자원화로 탈바꿈이 될 지는 예전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되돌아 보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곳이지만, 시간의 흐름이 약이 되고 추억이 되어 , 그 옛 추억으로 만들고, 그 추억을 바탕으로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반은 바다고 반은 산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생활터로 만들어졌다.
바다에서 삶이 만들어지고 생활이 만들어 지듯 , 육지에서도 그렇다.
푸른바다의 아름다운 장관이란 육지에서만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동경에 대한 상반된 환경이 또 다른 활력소를 만들어 준다.
이렇게 자연의 혜택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 존재할때만이 삶에 대한 가장 소중함을 느끼는 행복감에 살아 갈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낸 어색한 자연은 처음 태고의 자연을 모방 할 지 몰라도 같거나 더 나을 수 는 없다, 역사의 지속성을 자연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후손과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하여ㅆ든, 이곳의 여정을 뒤로하고 정동진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위의 기지국으로 통하는 길과 아래로 가는양갈래의 길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있다, 등명락가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이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처음오는 절이지만,한눈에 보아도 웅장함과 세련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위치는 뒤로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푸른바다가 탁트여 보여,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누가 보아도 잘알 수 있다.
오늘은 이만쓰고 다음에는 등명락가사를 잠시 적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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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으로 누려야할 기본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공무원이기에 사람임을 포기해야하는 정치적 관점에서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판사들이 보는 관점에서 달라지는 판결이기에 어떻게 보면 판사자체의 성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것이기도하다,
유럽에는 오히려 고위층의 공무원들을 정치적 중립에 대해 법으로 명시되고, 하위직들은 정치활동을 해도 인정이 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권력의 정치성향에 공무원들을 수족으로 생각하여, 정치적 중립을 중요시한다, 고위직의 정치활동에 필요한 수단으로 보기때문이다.
그래서,옛날부터 공무원들은 당연히 여당측의 표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한다.
힘없는 사람들의 정치적 활동으로 그 권리를 법으로 담아서 그들을 보호하고, 힘있는자들의 정치활동을 차단해 중립적 오너로서 사회를 통치하는 것이 마땅히 당파 싸움에서 벗어나 모든사람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편히 살수 있는 정치를 펼수 있을 것이다. 생활자체가 정치이고 그것이 정치에 반영되어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다.
그 생각들이 지금이나 옛날이나 별 달라진게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존중과 삶의 가치가 존중되어야한다. 개인의 삶, 가치의 존중에 대해 등한시 하고 벙어리 되기를 강요한다면 독재적권력의 권력자들에 의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옛날 자유당시대에는 초헌법과 주먹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다스렸다고 한다면 지금은 허가를 받은 합법적 공권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삶이 얼마나 사회에 반영이 됬는가는 우리들 스스로 생각을 해보아야한다.
남에게 해를 입힌것이 아니라면 국정운영에 참고를 해야할 권력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눈의 가시를 빼어버린다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과연 옳은가!, 국정운영에 반영하면 권력을 유지 못할까 안달이나 아예발로 비비고 또 비며가면 확인이라도 하듯 법으로 옭아맨다.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이지만, 그역사속에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못들어가는 것은, 권력자들의 당파싸움 또한 5000년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권력만 잡으면 이전의 상대방에 대한 역사를 지우고, 또, 지우고 이러한 반목이 걸림돌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것이 사회에 녹아 축척되며 오류를 수정해 나가야 계속적으로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역사를 되돌리는 행위는 , 역사를 좀먹는 암적존재인 것이다.
자기의 생각은 옳고 남의 생각은 틀리다라는 것은 수장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옛날의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이 적어, 주로 흑백논리와 색깔론으로 공격을 해왔다. 그 색깔이 여러색깔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국가에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다보니 여러색이 아름답게 어울려져야하는데, 세상에는 2가지 색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
많은 색이 융합되어야 아름다운 색이 나오는 것이다. 상대방을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야한다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틀리면 다 적이다.
야당에 대한 린치가, 공권력으로 변하여 집행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옳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말해준다, 폭력과 테러,린치로 상대방을 굴욕시키려했지만, 그 권력욕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법의 모순이 그대로 베어 있다는 것이다. 이법으로 안되면 저법으로 걸린다는 것이다,
법의 일관성이 없다,
칼자루 쥔자들이 장땡인 것이다.
모든법은 헌법에 우선시 되어서는 안된다.
하기야 헌법도 고쳐야 한다는 판국에 진리가 있겠느냐만은 적어도 도리와 인간적 삶이 되어 있어야한다.
개개인에 대한 인간적 삶이 무시되는 사회가 과연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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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보면 합법적인 파업은 업무방해로 형법에서 논의 할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파업만하면 말도 안되는 검찰,경찰의 잣대로 불법을 만들어 헌법과 노동조합법을 기만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법에 대한 집행권이 권력에 의존하다 보니, 법자체가 그야말로 자기마음대로 행해진다는 것이다.
철도노조 김기태 위원장구속도 가만히보면 정확한 근거가 없다, 파업이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해지,근로조건으로 인한것이고, 점거나 대체인력등의 방해도 없고 노조법상 적법한 절차였다.
정부는 공공부문선진화를 반대했다는 막연한 잣대였다. 요즈은 증거가 우선이 아니고, 그럴것이다라는 미리 예견하고 추측으로 법을 집행하다보니, 상당히 방대하게 코를 걸수 있다. 증거에 의한 확실성을 가진것이 아니라, 추측에 의한 추측법이다. 추측법이 형법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 옛날, 궁예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고, 반대세력들을 축출하기 위하여 관심만 가지면 되고 내가 곧 법이라는 관심법과도 같다는 것이다.
불법에 대한 잘못에 대해 하나하나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그냥 두리뭉실 불법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다보니, 형법으로 만들어진 업무방해에 대한 행위자체가 노조법과 헌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것이다.
노동3권을 인정하면서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한다.
기득권이 친일세력이 많아서 인가? 그건 자세히 모르겠다.
이러한 형법들이대기를 생활화하다보니, 대한민국은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범법자를 양성하는 범법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라가 정치를 잘못한 생활범범자를 만들고 양성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티내기가 권력에 대한 맛으로 중독되어, 그 맛에 취해 그저 칼날을 형법이라는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것이다. 마약맛 중독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도 중독이다.
마약은 더러운 중독이고 권력이 깨끗한 중독이가!, 마약이나 정치권력이나 중독자는 매한가지다. 중독이라는 것은 거기에 너무 빠지다보니, 다른것이 보이지 않고, 그것만 보이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없다.
법의 집행하는 도구들은 앞으로 로보트로 만들어 집행하는 체계로 바꾸어야한다,
적어도 법에 대해 상위법이무엇인지,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체제이니까 말이다. 우유하나 훔치다 걸리면, 대통령이건,거지건간에 공정하게 집행하는 법말이다.
뇌를 지닌 인간이라면 적어도,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법이라면, 인간의 정은 형법에도 베어 있어야하고, 무엇이 우선인지는 깨달아야하는 깨달음이 있어야하고, 약자와 남을 배려하는 공경심과 사회적인 사회성,도덕성,객관성등이 법에 베어 있어야한다. 똥묻은 개가 재묻는 개보고 뭐라했던가!
적어도 권력에 대해 재미를 찾는중독자는 되지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위의 사람이 보면, 오히려 차라리 경찰서에 끌려가서 얻어맞고 나오는 것이 낫다. 왜? 뒷끝이 없으니까.
범범자를 양성하는 나라가 후손에 대해 자랑하듯 휘둘러대는 것은 후진국에서도 아주창피한후진정치이다.
적어도 선진국대열, OECD의 반열에 들어선다고 떠들고 다니는 관료들이라면, 내용은 못채워도, 무늬라도, 그럴싸하게 하여야 되는않는가!
스스로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법치국가를 떠들며 다니는 파렴치한 행동은 삼가해야 되야겠다.
이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역사속의 한장으로 남겠지만, 어른들이 후손에게 보여야할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는 추하지 않는 백발들로 변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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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집회마져 차단해 한곳으로 몰고, 표현의 자유마져 말살하고 있습니다.
어제 텔레비젼을보니, 역사의 기록을 남기려고, 오랑캐의 침략을 피해가면 내장산, 오대산, 강화도등을 떠돌며 서고를 짓고 침략에 의해 불에 타 허물지고, 유실되는 것을 , 지켜온 선조들의 정신이 역사속에 베어 있습니다.
선조들은 진보를 표방하지도 않아 그야말로 대부분의 우리들이 지금생각하는 전형적보수주의자들입니다. 지금은 보수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자들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뱉는.
지난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명박 정권은 지우개로 지우듯, 역사를 지우려합니다. 역사는 국민의 합의와 그때의 노력들이 접목하여 남은 것은데, 자기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지우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렇다고 없어지지는 않죠,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조금이라도 담는 오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족의 혼을 팔지않는...
조합원들에게 배포할 전단지들이 금방 줄을 뜯긴채 종류별로 탁자위에 나열되 있습니다.
멀리서도 볼수 있게 대형스크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첨단 미디어가 어디를 가나 활용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뜻이 담긴 노란풍선이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 옆에 노동법개악,노조말살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는 대형 현수막이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집회대오 사이를 누비며 김밥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바삐 움직입니다. 매번가면 이런 풍경울 볼수 있습니다. 나도 갑자기 비가와서 우의를 살려고 하니, 그전에는 1천원에 파는 것을 2천원달랏니다.그래서, 비싸서 안산다고하니 5백원그 자리에서 깍아주어 1500원에 샀습니다. 500원싸게 샀는데도, 왠지 씁쓸합니다
출출한 허기를 달래주는데는 이것들만한게 없죠
무대 뒷편에는 몸짓패들이 열심히 마지막으로 율동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고생들하여 동지들에게 그 멋진 율동을 보여줍니다.
무대밖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날 전야제에 천막이 사방으로 쳐서 있어, 가운데에 꽉차는 바람에 대오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노동자대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보기만해도 입과 마음이 즐겁습니다
올해는 과메기도 등장을 했네요.인기 짱입니다. 맛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서명전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프가니스탄 파평을 반대하는 서명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동탄압,노동말살, 공권력,구사대의 만행에 피호 얼룩지고, 여기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애절한 투쟁을사진으로 남겨 사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 민주노총, 2009 전국노동자대회
민주노총 오늘 여의도서 전국노동자대회
"노동탄압 중단하지 않으면 12월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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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잔혹한 유린과 탄압, 착복 속에서 무수한 조상들이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래도, 조상들에 대해 예우는 못할 망정,항일 투쟁을 벌려온 독립군에 대한 모독,민족의 한,멸시를 어찌 대한 민국의 국무총리가 조상을 잡아 생체 실험을 한 731부대 항일 독립단체로 안단말인가?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도, 요즘얘기하는 중도 실용외교로 나라의 국익을 위해 애쓰신다하더라도 , 차라리 가만히 계셨으면 이런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학교의 총장까지 지내신 분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리치려고 했던가! 진짜 코메디도 비슷하게 말을 해야 웃고 넘어가지, 딴나라아니, 일본역사를 왜곡하려고 온것 같은 사람처럼 말을 하는가?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흘러나가는 방송앞에서..
어찌 통탄하지 아니 할 수 없는가!
아무리 좋게 봐도 그렇지, 우리의 역사,조상들의 얼과 혼, 우리나라 국민의 지식수준을 모독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루투,미적분등의 수학적 계산에 앞서, 밑바탕이 든든한 생각에서 이런것도 배워야 옳지 않은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국무총리가 방송앞에서 딱딱해진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농감한 것으로 그냥 웃고 넘어갈까?
아니면, 정신이 없어, 그냥 아무생각 없이 당황해서 잘못나온 이야기로 흘러보낼까? 그래, 그럴꺼야.
관련기사 ; 정운찬 “731부대가 항일독립군 아닌가요?” 파문
정 총리 ‘동문서답’… 731부대가 뭐죠? “항일독립군인가요”
정운찬 “731부대는 항일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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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역사 교육 '분서갱유'
역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역사학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생물학에 관한 지식은 생물학자에게, 경제학 문제는 경제학자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2008년 대한민국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을 역사학자가 아닌 다른 전공의 학자와 정치가가 주도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교과서 검정 권한을 가진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내용을 첨삭 수정하고, 교장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시·도 교육청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만약 이 같은 처사가 옳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나 역사 교사는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도대체 정부가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가 함께 집필한 역사 교과서 대신에 비역사 전공자가 쓴 이른바 '대안 교과서'를 더 신뢰한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의 역사학과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고 있는 특정 역사 교과서 탄압과 그 교과서 집필자에 대한 '마녀 사냥'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견될 만하다. 도대체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이 같은 야만적인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
왕조시대 正史로서 역사 교과서?
| ▲ <뉴라이트 비판>(김기협 지음,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
"뉴라이트 역사관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는데 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가 맞다. 그러나 그것만인 것이 아니다. 이기적 성향을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지만, 그 밖의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행동이 좌우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다른 요인을 일절 돌아보지 않고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본다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볼 수밖에 없다. (…)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를 뉴라이트는 만들고 싶은 것이다." (10쪽)
뉴라이트는 한국이 강자가 군림하는 사회가 되면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파시즘을 꿈꾸는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파시즘과는 정반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신봉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민족주의를 단연코 배제한다. 단지 하나 걸리는 것은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운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근대를 수단으로 해서 반근대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독일 나치즘은 근대를 지양할 목적으로 프로파간다와 대중독재라는 근대적 수단을 사용했다. 이에 비해 뉴라이트는 국가 권력을 전 방위적으로 동원하는 파쇼적 수단으로 자본주의 문명화를 목표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근대적이다. 그럼에도 뉴라이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근대의 원칙을 역사 교육에 적용하는 방식은 너무나 전근대적이다. 그들은 왕조시대의 정사(正史) 개념으로 근대국가의 역사 교과서를 이해한다. 왕조를 위해 좋은 역사가 올바른 역사이듯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옹호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역사만이 역사 교과서로서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민주적이고 반시장적인 뉴라이트 역사 교육관
뉴라이트 역사 교육관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모순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다. 각 개인의 다른 생각을 공론의 장에서 펼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면 자유민주주의는 사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주장의 옳고 그름을 의견의 시장인 여론을 통해 여과하는 정치체제를 지향한다.
원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역사 교과서는 자유발행제가 돼야 하며, 어떤 역사 교과서를 선택할 것인가는 자유로운 시장, 곧 교육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국가가 교과서 서술의 지침을 제시하고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이 특정 교과서를 선택하지 말 것을 강요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어떤 근거로 뉴라이트는 자신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신봉자들이라고 주장하는가? 김기협은 인간 관계는 결국 이기심에 의거해서 구성된다고 보는 신자유주의 인간관과 자본주의 문명관을 그들이 견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적자생존 원칙에 따라 승리한 자가 성공한 삶을 산 것이며, 역사 교과서는 그런 삶을 영위한 사람들의 관점에 입각해서 기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건설을 둘러싼 노선 투쟁에서 이승만이 승리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박정희 주도아래 근대화 혁명이 성공을 거뒀다는 결과에 근거해서 역사 교과서 서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 말대로, 역사 교육은 개방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계시민 교육을 하며 나아가 사회 비판적 안목을 형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진다.
반면교사로서 역사
역사교육의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요청되는 것이 다양성이다. 적자생존은 진화의 가시적인 현상일 뿐, 본질은 다양성의 확대다. 생물종의 다양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유전자 풀(pool)을 늘려가는 과정이 진화다. 역사란 흔히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한다. 이 말뜻은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될 나쁜 본보기로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정희가 이룩한 빛나는 업적으로 그들이 한국 현대사에 드리운 어둠을 은폐하는 역사 교과서는 반면교사가 될 수 없다.
뉴라이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했다"는 연설을 함으로써 대통령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대 독립 투쟁을 벌였던 애국지사의 자손들은 비참하게 사는 데 일제 협력자의 자손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예회복은 아직까지 안 됐는데 독재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계속 권력 가까이에 있는 승자의 역사를 성공한 역사로 옹호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의식인가?
사마천 이래 역사가들은 "역사는 과연 정의로운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했다. 실제 역사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객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실증사학은 승자 중심의 역사를 탈피할 수 없다. 사마천은 천하의 나쁜 도적은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리고 살았지만 백이와 숙제는 굶어죽는 역사가 과연 천도(天道)를 실현하고 있는지를 회의했다. 그럼에도 그가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무릅쓰고 역사를 썼던 이유는 현실의 부조리를 역사로 기록함으로써 현실이 결핍하고 있는 천도를 역사 서술로 보상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가란 실제 일어난 역사의 불의를 역사서술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역사란 나의 존재와 인식을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하려는 인간적 노력이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를 낳을 수 있으므로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가 될 수 있고,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성공을 낳음으로써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가르치는 것이 역사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의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개발독재를 21세기에서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가가 대한민국을 이끌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하는 것은 역사다. 고로 모든 것은 역사다." 하지만 특정 관점과 이데올로기에 의거해서 변화를 보지 못하거나 막는다면 모든 것을 역사로 만들 수 없다. 사마천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여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통달하는 것을 역사서술의 목표로 삼았다. 오늘의 역사 교육이 이 같은 역사의 높은 이상과 도덕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역사는 더 이상 삶의 스승이 될 수 없다.
21세기 '환경 시대'로의 전환을 위한 역사 교육
신자유주의 인간관과 더불어 문제가 되는 것이 뉴라이트는 한국 근·현대사를 자본주의 역사의 관점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가 한국 자본주의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21세기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인류가 계속해서 자본주의 문명을 향한 '돌진적 근대화'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문명화를 위한 '성찰적 근대화'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가?
독일의 바이츠제커(E. U. von Weizsäcker)는 20세기가 국민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전지구적 정치가 요청되는 '환경의 세기'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경제 시대'의 방식대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경제 개발을 한다면, 인류의 멸망은 시간문제다. 2007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의 참석자들도 인류가 직면한 최대 문제로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를 꼽았다. 이제 역사의 화두는 무한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이 돼야한다. 이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에 입각해서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역사 교과서를 집필해야 한다.
끝으로 나는 뉴라이트가 제기한 문제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정당하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은 잘못 태어난 국가라는 원죄의식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내전이 헤게모니 투쟁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인 정체성을 결정하는 코드가 민족인가 국가인가와 대한민국이 어디로 향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정립을 둘러싸고 벌이는 역사 담론 투쟁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의 정치화'를 지양하고 '정치의 역사화'로 나갈 수 있도록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들에게 논쟁의 주도권을 되돌려 줘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정상화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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