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언론·지역·비정규직운동으로 다양한 진화
ㆍ인터넷 카페들도 “촛불 살아있다” 헤쳐모여


지난해 5월2일 서울 광화문에서 첫 ‘촛불’을 밝힌 후 1년. 촛불은 그 사이 언론운동·지역운동·비정규직운동 등으로 분화·연대하며 진화했다. 광화문의 촛불 시민들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운동가나 인권운동에 나서는 대학생 등으로 변모했다.

김성균씨(45)는 매일 오전 7시 종로구 운니동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 사무실로 출근한다. 오후 7시까지 온라인 카페와 오프라인에서 회원들과 열띤 토론과 회의를 벌인다. 저녁에는 언소주 지역지부 회원들과의 모임에 참석한 뒤 자정쯤 퇴근한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시민이던 그는 촛불 이후 시민 5만200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언론감시 시민단체의 대표로 변신했다.

김씨는 “가족과 알콩달콩한 삶을 즐기는 소박한 시민에서 ‘전문 시위꾼’이 된 변화를 돌이켜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의 행태가 나를 바꿔놓았다”면서 “바쁜 일정에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일,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체 임원 비서인 조동호씨(48)의 일상도 180도 바뀌었다. 조씨는 매주 수·토·일요일마다 ‘강서양천 촛불시민모임’에 참석한다. 시민모임의 활동범위는 양천구청 횡령사건, 양천고 재단비리 고발 교사 파면사건 등 지역 현안부터 반민주악법 저지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조씨는 “사회적 이슈뿐 아니라 내가 사는 지역에서 비민주적인 일이 있을 때마다 감시하고 있다”며 “촛불을 계기로 시민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3 수험생으로 촛불집회에 나섰던 조성우군(19)은 대학에 들어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대학생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견을 내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촛불을 주도한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카페들은 헤쳐 모이는 중이다. 촛불의 진원지였던 아고라가 미네르바 구속 전후로 정부의 ‘집중 관리’를 받자 네티즌들은 해외 서버로 인터넷 망명을 시도하고 있다.

촛불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카페들은 연합 모임으로 조직의 틀을 짜면서 다양한 활동으로 분화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18일 안티이명박, 소울드레서, 815평화행동단 등 32개 카페는 ‘촛불시민연석회의’를 발족했다. ‘82쿡’ 회원들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 동조단식을 했고, ‘진실을 알리는 시민’은 바른언론 널리 알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조동호씨는 “촛불은 커다란 피플파워였고 영광스러운 시간들이었다”면서 “이를 계기로 아주 작은 데서부터 꾸준하게 시민운동이 일어난 것이 촛불의 더 큰 의미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정인·김보미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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