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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라는 말, 참 오랜만이네요.
Posted at 2008/11/21 15:28// Posted in 생활속에 흐르는 이야기들요즘 삐라라는 말이 언론 속에서 한창이다. 요즘도 이런말이 있나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것 같다.
지금의 보수세력들이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방법으로 흑색선전전을 하나싶다.
어렴풋한 내생각으로는 60년대 말이나 70년대쯤으로 알고 있다. 산으로 들로 가다가 보면 멀리서 하얀 종이가 보이면 무엇인가 달려가 본다, 그때 당시만해도 종이라는 것이 산에 들에 막 나딩구는 모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하고 보면, 우리가 지금 말하는 삐라다, 그때는 그것이 무척 흔했다,
종이가 없어, 지금의 시멘트푸대(그때 당시 세맨푸대라고도해다)를 손으로 비벼서 부드럽게 하게 뒤를 닦기도 하고, 신문으로 코를 풀기도 했던 시절이다.
물론 이런것으로 뒤를 닦거나 코를 풀면 느낌이 얼얼하다. 어떤때는 신문으로 코를 풀어, 코주변이 시꺼멓게 하고 다닐때도 있었다.
이런것에 비하면 이시절에 삐라의 질은 훨씬 좋아 금방눈에 띄는 것이 당연했다.
북에서 날려 날려보낸 , 우리 정권의 비리나 악의적인 표현으로 흑색선전전을 하였다. 지금의 우리가 북에 날려보내는 내용과 별반차이가 없는듯하다.
그래서 이것을 주워서 경찰서(파출소)에 갔다주면 제목이"철방구리"라는 반공이나 멸공내용의 만화를 주거나 또는 10센티자를 주기도하였다.
아니면, 학교에 갔다주면, 선생님이 한꺼번에 모아 두었다가 경찰서에 갔다주고, 대신 받아와서 상을 주는 형식으로 자나 만화를 주었는데, 경찰서에서 받는 것보다 기분이 좋았었던것 같다.
삐라내용을 읽는 것도 금했고, 보관도 하지 못했다.
삐라를 주워4등분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고 친구들과 놀다보면, 접은 흔적에 그때 당시는 위생관념이라는 것이 별로 없고 흙만지다 보면 손이 금방 흙투성이가 되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삐라를 몇번 만지다 보면 , 삐라는 더럽혀지면서 꼭 며칠 보관한 것 처럼된다.
어린마음에 만화책이나 자를 얻어보겠다는 생각에 파출소에 갔다주면, "너 언제주웠는데 이제갔다주냐"""꾸깃꾸깃 때탄것보니 며칠된것 아니냐?" 이런식으로 따져 물으니 "아니요,요 아까 주워서 놀다가 바로 갔고 온건데요" 어린마음에 따져묻는 듯한 경찰태도에 겁을 먹고, 자고 만화고 그냥 후닥줘 버리고 나온기억도 있다.
그때 당시 경찰관하면 죄가 없어도 괜히 주눅이 들고 겁이 났던때이다. 그렇게 보면, 경찰이라는 것이 대단한 권력과 위엄을 가졌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좋은 소리는 못들었다.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는자 간첩, 머리가 유난히 길고 엉켜지져서 산을 내려오면간첩, 친인척중에 안보이다가 갑자기 보이면 간첩, 담배값을 모르면간첩,예비군복(얼룩얼룩하여 개구리복이라고도함, 최근 80년대 중반까지 이옷을 착용함)을 비고 거리를 갔다왔다하면 간첩 등을 강조하던 시대.
멸공과 반공교육을 수시로 하며, 이데올로기 심기에 온 힘을 기울였던 정권이 있었던 시절.
흑백의 논리만 있던시절.
그 때의 생각이 문득난다.
그러고 보면, 보수는 보수다운 것 같다, 아직도 이러한 방법으로 북한의 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역사는 흐르고 변했어도, 이런 방법을 고수하고,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과연 새로운 세대로 혁신이 가능한지 참 아이러니하다.
일본제국의 천황을 위해 부모형제를 전쟁터 총알받이로 죽게하고, 조상들을 유린하고, 한민족의 씨를 말리고자, 창씨개명하고 민족정기를 말리고자 쇠말뚝을 박고하는 자들도, 앞으로의 실익에 도움이 안되니 다 용서하자고 하는 시대다.
진정 통일을 원하는가?
영원히 수평선을 달리는 대립을 원하는가?
이러한 방법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들이 돈이 안되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