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떼죽음을 당한 ‘용산 참사’는 철거민의 잘못으로 돌려졌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법과 원칙’을 천명하며 공권력의 기세를 한층 더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철거민 기소→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재개발 대책→유족 회유와 협상으로 이어지는 수순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해법이 용산 참사에 대한 국민의 의문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권의 인식…‘불법’만 초점 삶의 문제 외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용산 철거민 참사를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철거민들의 불법·폭력시위를 경찰이 법질서 확립을 위해 정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하다가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참사를 ‘사태’ ‘사고’로 부르거나 ‘도심 테러 행위’(한나라당 신지호 의원)로 규정한 데서 잘 나타난다. 시선을 철거민들의 ‘불법’에만 둔 채 본질인 ‘생존권’ 문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10일 내놓은 ‘재개발사업 개선안’이 미봉에 그치고, 참사의 책임을 철거민에게만 물어 사법처리한 것은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인식은 안경률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나 한승수 총리의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안 총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의 ‘공정한’ 수사가 있었고, 이제 정치권은 수사결과에 따라 법의 공정한 집행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실체적 진실에 입각해 진상을 엄정하게 규명했다”면서 “이번 사고와 관련해 불법·폭력 집회로 경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거나 사실을 왜곡해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최재영기자 cjyoung@kyunghyang.com>


공권력 행사…‘보호대상’ 사회적 약자 빠져

검찰과 경찰은 ‘용산 참사’를 거꾸로 공권력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공권력의 보호대상에서 사회적 약자는 빠져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생존권 요구에 나선 철거민 문제는 ‘치안의 문제’로 치부됐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10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용산 참사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라고 말했다. 또 “나약하고 눈치 보는 경찰의 모습으로는 시민의 안녕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용산 참사는 ‘자신들의 의사를 불법과 폭력으로 관철시키려는 구태’로 규정됐다.

검찰은 이런 경찰의 논리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김경한 법무장관은 “경찰관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물리적으로 피해가 간다 해도 정당한 공무집행이면 면책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권력에 대해 불법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은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경찰이 앞으로 공권력이란 간판 아래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 준 것이다. 용산 범대위 홍석만 대변인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수기자>


재개발 대책…‘원주민’ 쫓는 기존방식 고수

정부가 10일 내놓은 용산 참사에 따른 대책엔 속시원한 해결책이 빠져 있다.

입주대책을 마련한 뒤 개발하는 순환재개발 방식은 공공성 결여로 실효성이 없고, 갈등 해소를 위한 분쟁조정위원회 신설은 4년 전 내놓았던 정책을 재탕한 것일 뿐이다. 상가 세입자 대책은 더욱 그렇다.

핵심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권리금 제도’인데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재건축 세입자 대책은 아예 포함조차 안됐다. ‘답’이 없는 만큼 용산 참사는 진행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여전히 ‘경제 활성화를 위한 속도전’ ‘주택공급 확대’라는 개발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살 곳, 일할 곳을 지켜달라”는 서민들의 바람이 반영된 흔적은 없다. 시민·사회단체의 ‘임대주택 건설비율 확대’ ‘광역 공영개발방식 도입’ 등 10대 요구도 대부분 무시됐다.

철거를 반대하며 이주대책과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전국 100여개 뉴타운·재개발 분쟁 지역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이 때문에 뉴타운·재개발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계속해서 서민들의 바람을 외면하는 주택정책을 고집할 경우 제2의 용산 참사는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대광기자 iloveic@kyunghyan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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