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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정보 및 후기/가볼만한 여행지에 해당되는 글 4건
- 2010/10/30 설악산 소공원의 가을 풍경
- 2010/04/01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
- 2009/10/30 한강의 발원지-검륭소
- 2009/10/28 ‘적벽’이 된 채석장, 경이로워라 -아트밸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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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매표소를 들어서면 바로 앞으로 설악산 반달곰이 정면에 있습니다. 가을에는 설악산만한 단풍도 없을것같습니다.
전국에서 설악산 단풍을 구경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소공원의 볼거리 중 주위의 단풍나무는 각 산의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더욱 아름다움을 느끼 실 수 있습니다.
물론 사방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더 할 나위없는 볼거리이죠
가을이라 이맘때쯤이니, 단풍이 소공원까지 내려와 한층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소공원에서 권금성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수십차례 운행합니다. 가을에는 아침일찍 표를 예약해야만 오후에 타실 수 있습니다.
늦게 오셨다가 케이블카를 못타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등산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소공원을 야간오르다보면 부처님 대불상이 있습니다.
조금 오르면 다리가 두개 나오는데, 비선대방향으로가는 돌다리는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고, 지금다리는 70년대부터 오던다리를 유지보수하며 쓰던다리입니다. 처음에는 목재로만 만들어진 다리였으나 점차 시멘트로 보수하고 철재로 보수하다보니 이런 형태가 되었습니다.
신흥사 방향인데요, 이 다리가 내년에 공사를 한답니다.
이다리를 보는 날이 얼마남지 않은곳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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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강원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89-2, 시도유형문화재 제32호 (고성군)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창건년대(創建年代)나 창건자(創建者)는 알 수 없으며 조선(朝鮮) 중종(中宗) 15년(1520) 군수(郡守) 최청(崔淸)을 비롯한 역대 군수가 중수(重修)하였다 한다.
주위가 모두 석봉(石峯)으로 되어 층층이 대(臺)를 이루고 높이도 수십 길에 달하는 곳에 위치하여 동해(東海)의 파도가 암석에 부딪쳐 흰 거품을 남기며 부서져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壯觀)이다.
특히 해와 달이 솟을 때의 정경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서 희귀한 경치라고 할 만하다.
고종(高宗) 21년(1884)에 타버린 것은 1928년 면장 김용집(金容集)의 발의(發議)로 지금의 정자(亭子)를 재건(再建)하였으며,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5월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大統領)이 친필로 쓴 것이다.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창건년대(創建年代)나 창건자(創建者)는 알 수 없으며 조선(朝鮮) 중종(中宗) 15년(1520) 군수(郡守) 최청(崔淸)을 비롯한 역대 군수가 중수(重修)하였다 한다.
주위가 모두 석봉(石峯)으로 되어 층층이 대(臺)를 이루고 높이도 수십 길에 달하는 곳에 위치하여 동해(東海)의 파도가 암석에 부딪쳐 흰 거품을 남기며 부서져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壯觀)이다.
특히 해와 달이 솟을 때의 정경은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서 희귀한 경치라고 할 만하다.
고종(高宗) 21년(1884)에 타버린 것은 1928년 면장 김용집(金容集)의 발의(發議)로 지금의 정자(亭子)를 재건(再建)하였으며,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5월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大統領)이 친필로 쓴 것이다.
자료출저 ;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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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 태백시 금대봉(1,418m) 기슭에 깊이 들어앉은 검룡소는 514.4km에 이르는 한강의 발원지로, 아무리 가물
어도 날마다 2천t의 지하수가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올라 깊이 1~1.5m, 너비 1~2m로 동글동글하게 파인 암반을 20여m나 흘러 한강을 이룬다.
사계절 물의 온도가 9℃로 일정하며, 주위의 암반에는 파란 이끼가 꽃처럼 피어나 절경을 이룬다. 항간에는 검룡소 상류 1.5km에 있는 제당궁샘(1,340m)이 진짜 한강의 발원지라고 하는데, 이는 금대봉 기슭의 제당궁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의 굴물에서 솟 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런 검룡소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삼수령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정선 쪽으로 5분쯤 달리면 검룡소 입구 안내간판이 보인다.
검룡소까지는 여기서도 6.8km를 더 들어가야 하는데, 길이 자동차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데다 군데군데 비포장도로가 나타나 시간은 거리에 비해 더 많이 걸린다.
하지만자동차 통행이 어려운 만큼, 버스통행이 드문 만큼 검룡소로 가는 창죽동 일원은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산골풍경을 잘 간직하고 있다. 졸졸졸 얕은 물 이 흐르는 개울하며, 가가호호 쌓여있는 장작더미, 저녁 무렵이면 하늘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추억속을 더듬게 할 만큼 정겹다.
버스 종점인 안창죽을 지나 2.9km 정도를 더 달리면 차량 통제막이 설치된 검룡소 입구에 닿게 된다.
입구 왼쪽편에 있는 '검룡소'란 표석을 지나 골지천 옆으로 난 오솔길을 20여 분 걸어 오르면 기대하던 검룡소가 나타나는데, 검룡소로 가는 그 길의 풍광이 압권이다. 처음엔 찔레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길 한켠을 메우지만 중간에 있는 개울 하나를 건너면 울창한 낙엽송 터널이 객을 반긴다.
타박 타박 걷는 재미가 흥겨울 만큼 길도 완만하고 주변 풍광도 멋스러워 이 길은 트레킹 장소로 제격이다.
눈앞에 육각정이 보인다. 검룡정이란 이름이 붙은 이 육각정은 태백시가 1989년에 건립한 것으로, 검룡소는 이 검룡정에서 야트막한 바위 하나만 타고 오르면 나타난다. 둘레가 20m밖에 되지 않아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작고 앙증맞은 모습이지만 샘 속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샘이 깊고 아득해 놀라움을 준다.
하지만 검룡소의 그 깊이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붙드는 건 주위 암반과 와폭이다.
물이끼가 꽃처럼 곱게 핀 와폭은, 옛날 황해의 이무기 한 마리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이곳에서 안간힘을 다해 꼬리를 흔드는 통에 패였다는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기묘하게조각되어 있어 신비롭다.
특히 지하 어디쯤에서 송글송글 올라온 물이 요리 흐르고, 저리 떨어지고, 궁글리고, 휘감기고, 뒤집혀지고, 포말을 만들고 하면서 시끄럽게 계곡으로 흘러 내려가는 모습은 임계~정선~영월~단양~충주~여주~양평~서울을 지나 강화만으로 빠지는 한강을 보는 듯 감동적이다.
관람시간 : 연중개방
입장료 : 없음
편의시설 : 화장실 1동
주차시설 : 소형 40대(주차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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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아트밸리가 최근 개장했다. 산중턱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주변은 조각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물의 규모로만 보면 지방에 있는 자그마한 조각공원 정도로 여겨지지만 아트밸리는 꽤 값진 의미가 있다. 신북면 독곡리 아트밸리는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폐채석장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해서 아트밸리에 가면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전시물이 아니라 포천석을 캐내려 바위를 깎아냈던 폐석장 자리다.
포천석은 꽤 이름난 석재였다. 인터넷 포털 검색란에 포천석을 치면 석재상 이름들이 줄줄이 뜬다. 그냥 화강암이라고 하는 것보다 포천석이라고 하면 더 알아준다는 뜻이다. 국회의사당, 청와대, 독도의 비석에도 포천석이 쓰였다. 빛깔이 곱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포천석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고 10년쯤 전에 독곡리 포천석 채석장은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채석장 터에 사람들이 눈길을 돌릴 리 만무해, 수년 정도 방치됐다. 버려진 채석장을 어떻게 복원할까? 포천시청 관계자는 복원 방안을 고민하다 채석장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채석장 터가 물에 잠겨 있었는데 마치 깎아지른 절벽이 비치는 호수처럼 보였던 것이다. 삼국지의 적벽이 이렇다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 속에는 버들치와 가재가 살고 있었다. 산중턱에 어떻게 물고기가 살게 됐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수질은 1급수였다. 수심도 꽤 됐다. 동네 둠벙 정도가 아니라 가장 깊은 곳은 수심 30m에 달했다. 절벽의 높이는 50m다. 호수는 그리 넓지도 크지도 않다. 7040㎡다. 어찌됐든 외국에 온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폐석장은 흉물스러울 수밖에 없다. 숲을 걷어내고, 돌을 깎아낸 자국은 사람으로 치면 피부 속 밑의 세포조직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생채기가 아름다운 호수로 변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포천시의 폐채석장 복원 계획은 문화공간으로 꾸미자는 쪽으로 방향이 선회됐다. 협곡을 따라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관람대를 만들고 한쪽 귀퉁이에 무대도 만들었다. 지난 24일 개장식 날엔 한 방송사 주최로 음악회도 열렸다. 여기에 모노레일도 설치했다. 폐채석장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꽤 급한 편이어서 민자를 유치해 모노레일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트밸리는 어찌보면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제부터는 사람의 몫이다. 아직까지 작품은 많지 않다. 바위에 깔려 있는 노래하는 사람,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는 조각품 등 10여점의 작품이 있지만 ‘아트밸리’란 이름에 걸맞게 꾸미려면 작품도 많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 모형을 한 전시관도 있지만 전시품은 별로 없다.
아트밸리가 이름값을 하려면 프로그램도 좋아야 한다. 눈만 즐거운 관광지는 쉬 질리기 때문이다.
여행길잡이
포천시에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찾아가는 길은 약간 헷갈린다. 내비게이션에 경기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282로 찍으면 된다. 일부 내비게이션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트밸리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모노레일은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www.artvalley.or.kr (031)538-3484
<최병준 기자 bj@kyunghyang.com>
*****자료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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