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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9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후문 앞. 100여명의 사람들이 징 소리가 나자 몸을 낮춰 구부렸다.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 앞에서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위한 오체투지 순례가 시작됐다.
지난해 9월4일부터 53일 동안 지리산 노고단~계룡산 중악단간 175㎞ 구간 순례. 그리고 순례단은 지난 3월28일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천고제를 지낸 뒤 2차 순례를 떠나 103일 만인 지난 16일 서울 남태령에 도착했다.
서울 입성 5일째. 수경 스님, 문규현·전종훈 신부는 100여일의 오체투지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나왔다. 출발 전 수경 스님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오체투지 참여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지난해 받은 무릎 수술의 후유증으로 ‘팔힘’으로만 기어가다 보니 팔 부위도 나빠지는 몸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왼쪽부터) 등 ‘사람·생명·평화의 길’ 오체투지 순례단이 20일 오후 서울 한국은행 앞 부근 도로에서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박재찬기자
서울 입성의 뜻을 묻자 스님은 인사만 받고는 “말을 안 하기로 했다”며 침묵했다. 순례단 명호 진행팀장은 “길 떠나는 사람들이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언론 인터뷰는 안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참으로 머나먼 길을 기어서 왔습니다. 마치 한 마리 자벌레처럼, 한 마리 갯지렁이처럼, 한 마리 지네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도 낮은 자세로 땅바닥을 기고 또 기어서 마침내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16일 서울로 들어설 때 순례단이 남긴 글이다. “독선과 오만과 독단이 앞서는 소통 부재의 시대, 군부독재의 시절로 역주행하는 한반도 이 땅의 천인공노할 만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며 “안으로는 처절한 참회와 성찰의 자세로, 바깥으로는 위기의 한반도를 생명평화의 땅으로 일구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의 자세로 오체투지라는 극한의 고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느리고도 낮은 자세지만 오체투지의 뜻하는 바는 뚜렷하다.
문규현 신부의 형 문정현 신부도 서울 입성 후 용산참사 미사와 순례를 병행하고 있다. 문 신부는 한 손엔 묵주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문 신부는 “동생이 좀 전에 나보고 ‘왔냐’고 하는데, 몸의 한계에 부딪히며 버러지처럼 기어가는 걸 보면 눈물이 난다. 저게 사람 꼴이 아니잖아”라며 울먹거렸다. 그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가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이런 낮은 자세여야 한다는 걸 이들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이날 저녁 명동성당에 도착, 저녁 미사에 참여했다. 순례단은 21일 오후 서울광장~조계사의 1.8㎞ 구간에서 오체투지를 이어간다. 6월6일 임진강 망배단에서 남쪽에서의 마지막 오체투지를 진행한다.
명 진행팀장은 “임진강 이후에는 군사분계선을 지나 묘향산 상악단까지의 오체투지도 계획하고 있다”며 “남북 당국의 허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목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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